친구김봉두. 9


< 친구김봉두> 네티즌 사이에 널리 알려져서

하루라도 봉두를 만나지 못하면 마음에 비루함이 싹트고

하루라도 <송대헌의 교육마당> 열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난다는 이른바 봉두 증후군이

위험한 수위에 이르렀다 한다.

이에 대한 해결은 전적으로 보건 복지부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나 요새 조정에 믿을 넘이 누가 있겠는가?

서각이 민간차원에서 대체 의학을 베풀어 해결하기로 하였다봉두.8에서 필자 서각은 이미 소재가 고갈되었고

봉두.9 쓰라는 네티즌의 압력에 하룻밤 사이에

 가닥 남은 검은머리가 백발이 되어 머리카락 수준으로 보면 소백산 산신령의 반열에 오를 만하더라.

 

퇴근 무렵 봉두에게서 밥을 먹자는 전화가 왔다.

내가 술을 조심하는 낌새를 알고 있는 봉두는

술이라는 용어를 밥으로 바꾸었다.

감히 청하지 않았으나 소원하던 바라는 옛말이 있듯이

나는 반갑게 봉두가 있는 곳으로 갔다.

 몸이 다소 술병의 고역을 치른다고 할지라도 기꺼이

그의 안주가 되어 주리라그리고 봉두.9 글감을 챙기리라.

 

어디서 만날까?

내가 대답했다.

평교사 수준에 합당한 돼지 껍데기 집이 어떨까?

그래도 겨레의 스승인데 돼지 껍데기가 뭐야.

암소 갈비집으로 하지나는 봉두의 뜻에 따랐다.

참고로 서각은  마을에 하나뿐인 돼지 껍데기집에서

소주 마시기를 좋아한다삶아서 고추장 양념을 

돼지 껍데기를 석쇠에 구운 것인데 이게 사람 잡는 안주다.

암소 갈비집에는 봉두정성실 선생스테파노 신부님이 이미 자리해 있었다모두 봉두가 좋아하는 사람의명단에 오른

분들이다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방안 가득하니 봉두는 기분이 좋아 평소의 근엄한 표정은 사라지고 표정이 완전히 풀렸다연신 약간 벌어진 대문 니를 보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것이다가끔 그의 목소리  연설에 내가 "맞아!" 하면 두툼한 손을 내밀어 난데없는 악수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금방 소주잔을 비우고 다시 내민다.

확실히 나는 그의 좋은 안주인 것이다.

 

대낮에 횃불을 들고 사람을 찾았다는 디오게네스를 본받아

봉두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그렇게 해서 찾은 사람이 이분들인데 나는 언제부터 어떻게 봉두의 친구가 되었는지 도무지

 길이 없었다그래서 봉두에게 물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가 되었지?

 

봉두와 서각.

봉두는 서각이란 사람이 옛날 좃선일보 과거에서 장원 급제한 넘으로 글줄이나 쓴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문화행사에 가니까 서각이 있었다.

선생이라는데 장발을 하고 있는 꼴이 선생답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말이나 붙여보자고 어디에서 베낀   줄을 들고

그에게 내밀었다교사 김봉두라고 합니다.

이게 시가 되겠습니까?

 

아스팔트 길이 길이 아니듯

인간이라 부르는 곳에 사람이 없었다.

적당히 길들인 인간의  속에

사람이라 불리는 인간이 그립다.

 

서각은 한참 들고 보더니 좋습니다하고는 가버리는  아닌가지가 시인이면 시인이지거만하기는...

짜식이 까불고 있어... 그리고 그만이었다.

다시 서각을  것은 민중 집회 현장에서였다.

어느 추운 겨울 거리에서 트럭에 무대를 설치하고

집회를 하는데 서각이  코트를 걸치고 트럭에 올라 비장한 목소리로 자유와 정의가 굴욕 당하는 시대의...어쩌고 하는데 봉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같아 가슴이 찡하며 눈물이   같았다장발이 바람에 날리는 것도 괜찮게 보였다.

짜식... 추운데 소주라도 한잔 사줘야지...

무대에서 내려오는 서각을 불렀다.

그리고 김이 나는 오뎅  앞에서 소주를  병을 종이컵에

따르었다  잔이었다서각도 기분 좋게 마셨다.

서각은 봉두가  이야기를  때마다.

 

"좋아!" 혹은 "맞아!"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서각은 나를 이해하는   되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에

나이는 봉두가  많지만 나머지는 깎아버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친구하자!"

 

"좋아!"

 

 

봉두와 정성실 선생.

시내 학교로 전근을 오니  그놈의 봉투가 들어왔다.

봉두는 어머니가 놓고  봉투를 공책 사이에 넣고

다시   봉투에 넣어 학부모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종례를 했다.

나는 이름이 김봉두다김봉투가 아니다.

 이름이 봉두인 것은 원래는 봉투였는데

봉투를 싫어해서 봉두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니들 어머니께서 선생님께 봉투  적이 있는 사람 손들어  말이야나라에서 봉투 받았어학부형한테는 절대  받아나라에서 봉투 받아놓고 학부모에게  받으면 선생님이 나쁜 사람이 되는 거야집에 가서분명히 전해야 .

선생님께 봉투 가져오면퇴학시키고 어머니는 고발한다고.

알았어그래도 주고싶은 사람은 나중에 졸업한 다음  많이 벌어서 남거든 봉투에 넣어 가지고 .

세상엔 정말 돈이 필요한 곳이 많으니까.

 

발음이 독똑하고 발표력이 좋은 정똑순 양은

담임 선생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부모님께 종지리 열씨 까듯 일러바쳤다똑순이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정성실 선생은

봉두를   만나보고 싶었다.

정성실 선생도 공자퇴계소크라데스 같은 선생님들이

봉투 받고 가르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은 처음 학부모와 교사의 사이로 만나게 되었다그리고 그들은 교사는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우선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교사론에서 완전한 일치를 보고 친구가 되었다.

 

지난 여름 어느 토요일성실과 봉두 그리고 나는 들마루가

있는 단고기 집에서 개장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른  겨레의 스승의 점심 식사에 반주가 없어서  말인가그리하여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저쪽 자리에 앉은 남루한 사내가 우리 자리를 향해  빠진

소리로 외쳤다.

 

"봉두야니는 고등학교밖에  나온 넘이 우에 선생질하노?"

 

이랬다개고기를 먹던 뭇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꽂혔다봉두가 대답했다.

 

"방통대도 나왔어이누마야."

 

봉두에게 실없는 소리를 던진 사람은 이누록 선생이었다.

나만 모르고 그들은 이미 친구 사이였다.

이누록은 과한 술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여 뭇사람들의 기피

인물이 된지 오래였다놀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봉두성실 같은 너그러운 사람을 따르는 것이었다.

미션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누룩은 그의 기도로  도시에서 이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아침 직원회시간에 기도할 수학 문제 푸는 실력은 있지만 기도 실력은 없는 누록은

기도문을 종이에 적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읽을 수밖에 없었다누록은 목청을 가다듬어 기도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 아바지....."

 

이때 장난치기를  하는 옆자리의 박복음 선생이  종이를 얼른 감추어버렸다누록은 기도를 계속했다.

 

"기도문을 적어왔으나 옆자리의 박복음 선생이 감추었나이다내용은  종이에 적혀있으니  모든  이루어지게 하소서아멘"

 

박복음은 높은 이에게 불려가서 혼쭐이 나고,

이후로 누록의 기도문은 다시 사라지는 일이 없었다.

봉두와 성실의 사람됨이 이러했다모두 외면하고 기피하는

인물일지라도 사람으로 대하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었다.

대개 위만 바라보고 사는 세상에서 그들은 물이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낮은 곳으로 임하듯이 자신에 비해

약자인 사람들에 관대하다.

 

 

봉두와 스테파노 신부님.

나는 가끔 우리 사회의 왜곡에 대해 봉두에게 말할 때가 있다말을 해봐야 입만 아픈  마을에서  말을 들어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실컷 이야기하고 나면 대개 사람들은 나에게 충고한다.

 

"긍정적 사고를 가져라."

 

이렇게 근엄하게 충고하신다이른바 삐딱하다는 것이다.

이럴 때가 가장 외롭다.

 

유학의 이념입신양명(立身揚名)

이것을 우리는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나는 공자맹자와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입신양명이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왜곡되어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경쟁이라는 병리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두드리라그러면 열릴 것이다."

 

이것도 사람들은 천국에 가고싶다는 개인의 욕망을 신에게

기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

나는 두드리라는 말을 천국에 살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로 이해한다서구의 개인주의가 우리나리에

와서 이기주의로 왜곡되듯이 종교도 이렇게 왜곡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내가 신이 나서 지껄이면 봉두는

"맞아자네는 교회도  나가면서 그걸 어떻게 알지?" 이런다.

그리고 스테파노 신부님을 만나자는 것이다.

스테파노 신부님은 봉두를 죽음에서 구해  분이며,

추운 겨울에도 방에 불을 지피지 않고 사시는 분이라는 것이다노숙자와 같은 어려운 곳에 처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함이란다그리하여 스테파노 신부님과도 만나게 되었으며 귀한 것을 배우기도 한다.

 

봉두는 천주교에 입문하기 한때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그래서 신부님에게 전화를 했다.

 

"신부님자살한 사람도 영혼을 구원받을  있습니까?"

 

전화를 받은 신부님이 봉두에게 잠깐만 기다리라 하고 위치를 물어 봉두집에 오셨다.

 

"자살을 뒤집으면 뭡니까?"

 

"살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삶과 죽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서 해야  일이 많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신부님의 말씀은 봉두에게 환한 빛을 주었다.

그렇게 봉두는 살아난 것이다.

 

오늘 봉두가 보자고  속뜻은

나에게 따질 것이 있기 때문인  같았다.

첫째는 문선량 씨를 자기는 가장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존경하는데  부분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누구보다 깊은 좌절을 겪은 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할만한 정신 세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데

매우 소중한 부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해충이의 이름을 잘못 지었다는 것이다.

해충이가 지능은 낮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인데 이름이

해충이가 뭐냐는 거였다.

나랏돈 가지고 선거나 하는 넘하고 하늘 아래 어떻게

같은 이름을   있어이렇게 일갈하는 것이다.

나도  소리쳤다.

 

"자네 말이 맞아잘못했어!"

 

그는 다시 약간 벌어진 대문니를 드러내고 사람 좋게 웃었다.

 

 

                                                     -서각 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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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김봉두. 8



함께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는 다양하고 정답다.

어때?

날도 촉촉한데 할까?

오랜만인데 얼굴 보여 .

전화를 받네. 입적하신 알았지.

오랜만에 젖어볼까?

시월에 마지막 밤인데 뭐하고 있어?

 

광대 아무개의 노래 때문인지 시월의 마지막 밤도

권하는 대사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가 보다.

시월의 마지막 밤이 촌스럽고 아줌마스럽긴 해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 데는 충분함이 있다.

특히 술이 있는 쪽으로 사람을 끄는 데는

제법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시월은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시간의 흐름이 눈에 보일 듯이 빠르게 진행되는 계절이다.

특히 인생의 이상을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언어와 결합되어

애잔함의 시너지 효과를 유발하기도 한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봉두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모님하고 같이 오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우리 사모님은 말이라면 일단 거부하는 분이니까

리가 없다.

거기엔 이미 봉두 부부, 정성실 선생 부부가 자라잡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왔지만, 서울 출신인 봉두의 부인은 봉두와 천생연분이란 생각이다.

 

그에 의하면 부인이 자기보다 한술 뜬다는 것이다.

봉두의 힘은 아마 부인에게서 나온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른 아침 출근하기 전이었다.

지난 이비열 장학사 일행이 봉두의 집을 방문했다.

봉두가 고발한 건에 대해서 취하해 것을 부탁하러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봉두의 아내는 부엌으로 가며

지나가는 말을 날리는 것이었다.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말에 힘을 얻어 끝까지 당당할 있었다.

 

 

봉두가 사는 복지 아파트 옆에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공사장에서 땅을 깊게 파서 복지 아파트에 금이 생기고

건물 전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건물주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도 보상을 하지도

않았다.

일로 복지 아파트 주민들이 술렁거렸지만 부도덕하기로

유명한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도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하세요. 당신이 하면 누가 해요."

 

 

그래서 봉두는 대책위원장을 맡아 건물의 안전을 확보하고

집집마다 보상을 하게 했다.

봉두는 부인을 웃기는 여자라고 말했다.

부인은 빙그레 웃었다.

웃기는 여자라고 말할 봉두의 표정은 어조와는 달리

매우 행복해 보였다.

 

두루 아시는 바와 같이 명동성당은 우리 근대사의 민주화의

성지다.

많은 민주 투사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한다.

그런데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을 해산하도록 하기

위해 경찰을 투입해서 강제로 끌어낸 사건이 있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봉두는 일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교회사에서도 카톨릭교의 성지로 인정되는

사랑과 평화의 장소에 경찰이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봉두는 서울까지 없어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는 누이가 독일에서 보내온 독일제 자전거에 깃발을 달았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다니는 것이었다.

 

명동성당에 공권력이 말이냐!

 

파격적인 시위는 대한민국 민주화 투쟁사에서

1 시위의 원조로 기록됨이 마땅하다.

그러나 명동성당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공권력 투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심이 없는

평화로운 시민들은 ' 우스운 자식 보겠다'

표정으로 눈을 흘깃거릴 봉두의 소중한 뜻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쳤나 .

사람이 선생 김봉두래.

괴짜는 괴짜야. 이런 수근거림만 마을에 떠돌았다.

그의 뜻은 소문 속에 묻혀버리고 그의 우스꽝스런 모습만이

널리 알려져서 도시에 삐에로처럼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어느 교사의 부인이 자신의 남편이 아무런 소득도 없이,

아무런 명예도 없는 일로 하여 자전거에 구호를 걸고

시위를 하는 남편의 모습을 수용할 있을 것인가?

다만 봉두의 부인만이 봉두의 뜻을 귀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특히 봉두가 사는 소도시는

당나라당의 지지가 절대적인 곳이다.

당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보좌관이 써준 연설문을 읽지

못해도 구케우원이 있다.

지난 대선 놈현 후보의 지지가 20% 되었던 지역이다. 더구나 가시적 체면을 중시하는 '선비의 고장'이기에,

시민 운동이나 권력에 대한 저항을 일부 몰지각한 짓이라

여기는 분위기가 안개처럼 퍼져 있는 곳이다.

그리하여 공무원이라면 면장, 선생이 라면 교장이 되어야

대접을 해주는 찬란한 계급 문화가 꽃피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봉두는 며칠 대학수능고사 복도 감독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복도 감독은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화장실에

가는 학생이 있으면 동행하여 수험생의 오줌 누는 소리와

손전화 소리를 구별하여 본부장에게 고자질해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교육 용어다. 겨레의 스승이라는 자가 이따위 짓을 해야 하다니 참으로 쪽팔리는 일이라 아니할 없다.

그가 배치된 고사장에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

이얼분 장학사가 파견되었다.

이얼분은 평교사에서 작년에 장학사가 사람으로 원만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있다.

1교시 종이 울리고 장학사가 복도로 나왔다.

그는 봉두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옥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봉두도 무심결에 이얼분을 따라갔다.

얼분이 봉두를 돌아보았다.

 

"정위치 하십시오."

 

얼분의 권위 있는 멘트에 순간 황당했다.

봉두는 다시 복도로 내려왔다.

평교사와 장학사의 선을 분명하게 긋는 그의 말에 봉두는

쪽팔림을 금할 길이 없었다.

속에서는 씨바야 너도 정위치해라,

옥상에는 자살하려고 올라가니? 라는 말이 고개를 들었지만

사소한 일로 다툰다는 것은 자신을 쪽팔리게 같아

차가운 복도를 서성거리며 그의 권위에 경의를 표하기로 했다. 지위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겠는가?

 

아내에게 숨기는 것이 없는 봉두였지만 말만은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쪽팔림을 참고 자신을 이해해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웃기는 여자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을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에도 그러했듯이 봉두는 요즘도 정의구현 사제단이나,

참여연대에서 나온 전단지를 자전거에 싣고 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준다.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은 승진이나 돈과는 무관하다.

평교사로 퇴임하기로 작정했기에 승진을 바라지는 않지만

아내 외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는 지역에서

평교사로 늙어 가는 자신이 때로는

망망대해의 같다는 생각이 스칠 때도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공무원이면 면장이 되고 선생이면 교장이 되어야 알아주는

마을에서 평교사인 봉두가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준다. 그의 헐렁한 바지 가랑이 사이로 가을 바람이 부랄을 스쳤다.

춥다. 아니 무게 중심이 조금 흔들렸을 뿐이다.

겨울이 온다고 해도, 거센 바람이 분다고 해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사내 하나가 바람 부는 거리에 있다.

그의 어깨 위에 노란 낙엽 하나가 놓였다.

바람이 훈장처럼.

 

 

                                                      -, 서각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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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 gunni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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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김봉두. 7



국산 기계 50 이상 쓰면 고장나게 마련이지.

건강에 대해 이야기할 우리가 흔히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다. 하지만 봉두는 아직 기계가 말짱하다.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가?"

 

봉두는 태백산 아래 산수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지금은 벽지 점수가 있기 때문에 다투어

가려는 곳이지만 시대에는 두메산골이라 하여 누구나

꺼리는 곳이었다.

봉두는 태백산 아래 마을에서 제법 여러 해를 근무했다.

태백산은 마을마다 소풍 장소가 만한 비경을 품고 있다.

그래서 어떤 미학자는 이곳을 최후까지 숨겨두고 싶은

곳이라 했다.

말하자면 이곳에서 좋은 공기와 좋은 물을 마음껏 마시며

거기에 따뜻한 인정까지 보너스로 받은 것이

그의 건강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산수초등학교 학구에는 한센씨병이라 불리는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향락촌이 있다.

학생 가운데는 당연히 미감아가 있게 마련이다.

학기초에 학급을 편성할 봉두는 미감아가 있는 학급을

희망했다. 봉두의 사람됨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것이 박이익 선생의 미움을 사게 계기가 되었다.

박이익 선생은 지난 미감아 학급을 맡았다.

그런데 봉두 때문에 올해는 자리를 잃게 것이었다.

그래서 박이익은 사사건건 봉두에게 미움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었다.

 

봉두가 박이익의 심정을 이해하게 것은 미감아 학급을

맡으면 승진 점수가 있고 수당도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이해한다기보다 실은 속으로 박이익을 씨방새에 임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설정한, 사람의 범주에서 그를 추방했다.

 

미감아인 미강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봉두는 향락촌으로 가정 방문을 갔다.

아무리 담이 천하의 김봉두도 향락촌에 들어가는 길은

으스스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한센씨병에 대한 오해가 만연해 있었다.

보리밭에서 아기를 잡아먹는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해와 날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 보리밭에 달이 뜨면 아기 하나 먹고 / 꽃처럼 붉은 울음 밤새 울었다. - 말당의 문둥이

 

미강이의 집에 들어서자 미강이 아버지 문선량 씨가 뜨악한

표정으로 봉두를 맞이했다.

봉두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선량 씨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양손 모두 손목만 있고 손이 없었다.

미강이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윽고 조촐한 술상이 나왔다.

 

"선생님, 한잔 드십시오."

 

손목과 손목 사이에 술잔을 끼워서 봉두 앞으로 내밀었다.

봉두는 마침 십리 길을 걸어온 터라 목이 컬컬했다.

잔을 받아 단숨에 쭈욱 마시고 선량 씨에게 한잔 가득 부어

권한 다음 짠지를 집어 우적우적 씹었다.

이제 선량 표정이 밝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술잔이 차례 오고가자 선량 씨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사실 가정 방문 오시기는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작년에 박이익 선생님이 미강이 담임이셨잖아요."

 

". 2 미강이 담임이셨지요."

 

나중에 일이었지만 음식을 권하는 것은 마을 사람이

외부인에게 행하는 통과 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자기들이 주는 음식을 스스럼없이 먹을 있는 사람에게만

이들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져 있었다.

봉두는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돌아오는 길엔

귀한 초란(처음으로 낳은 ) 선물로 받아 왔다.

 

후로 봉두는 시간이 때면 향락촌을 방문하였다.

우선 마을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이 좋았다.

나랏님도 이렇게까지 마음으로 환영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온갖 귀한 먹을거리를 마음껏 먹을 있었다.

건강이 좋지 못한 사람들의 마을이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는 온갖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 그곳이다.

아마 봉두가 지금껏 나보다 기운이 것은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선량 씨는 남쪽 바닷가 마을 사람이었다.

선량 씨에게 한센씨병이 발병한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였다.

병이 나자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이곳 저곳 정처 없이

떠돌다 향락촌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한다.

풍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고향에 찾아갔지만 차마 집에 수가 없어 뒷산에 올라가 고향집 불빛을 보면서, 밤새도록 소주 마시며 울다 왔다 한다.

말당 어법으로 꽃처럼 붉은 울음이었다 한다.

 

봉두의 황소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슬픈 이야기를 안주 삼아 선량 씨와 함께 술을 마시다 봉두는 오줌이 마려웠다. 오줌을 누기 위해 신을 신으려는 순간 선량 씨가 달려와서 봉두의 신을 찾아 신겨주었다. 술이 과하지도 않은데 그러시냐고 물었다.

여기서 봉두는 귀한 교훈을 얻게 된다.

 

"신을 바로 신어라."

 

선량 씨에 의하면 한센씨 병균은 햇빛에 노출되면 금방 죽기 때문에 한센씨병 환자와 아무리 교류를 해도 감염의 우려가

없지만 신만은 바꾸어 신으면 된다는 것이다.

신은 습하고 어둡기 때문에 감염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향락촌에서는 항시 신을 바로 신으라는 것이다.

신을 바로 신는 일이 어디 향락촌에서만이랴?

이것이 봉두의 좌우명이 되어 봉두는 후로 남의 신을

번도 신은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봉두의 가정은 지금도 건강하고 평화롭다.

 

이제 여기쯤에서는 봉두가 박이익 선생에게 욕을 보여야

차례다.

이렇게 끝나면 미감아 학급 담임으로 점수와 수당만 챙기고

가정 방문 가지 않은 박이익에 대한 배려가 너무 소홀하지 않겠는가?

 

인근 산으로 가을 소풍을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이익 선생님이 아이들 전체에게 훈시를

하기 위해서 앞에 놓인 상석 위에 올라섰다.

아마 상석을 교단으로 착각하신 모양이다.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남의 조상의 묘소에 놓인 상석 위에 신을 신고 올라가다니 이런 호로 자슥이 있나 했다.

이때를 놓칠 봉두가 아니었다.

 

"얘들아, 모두 절해라. 저기 제물(祭物) 있다."

 

아직 제물의 낱말 뜻을 제대로 배우기 전인 아이들은

봉두의 구령에 따라 절을 하고,

이익이는 얼굴이 조율이시(棗栗梨枾) 감홍시가 되어서

상석을 내려왔다.

이익이는 사범학교를 보결로 들어간 분으로 나중에 교장이

되었다는 풍문이 있기도 하지만 이에 서각공은 말한다.

이익이의 허물이 그리 크겠는가?

손해를 멀리 것과 봉두를 만난 것이 자못 안타까울진져.

 

 

 

                                                      -, 서각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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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 gunnih

베를린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 Contact Me: gunni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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