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봉두 때문에 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그 일이라는 것이 봉두의 연설을 들어주는 일이다. 

봉두의 목청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 바 있지만 그 우렁찬 목소리와 분노에 찬 어조는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말의 내용보다 언어 외적인 곳으로 주위를 끌기에 오히려 모자람이 없을 지경이다. 봉두 이야기를 쓰면서부터 봉두 자신이 '내 친구, 김봉두'의 독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봉두는 쥐뿔이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친구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쥐뿔을 불러서 앉혀놓고 마치 쥐뿔이가 타도의 대상이나 되는 것처럼 열변을 토하는 것이다. 쥐뿔은 원래 나약하고 부드러운 정서를 지닌 사람인데 어쩌다 그의 카타르시스의 통로가 되어버렸는지 황당할 때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요, 자승자박이요, 자가당착이요, 자충수인 것을. 


그날의 일은 서각의 불찰이었다. 


'내 친구, 김봉두'에는 돼지 껍데기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 가까운 벗 가운데 그 돼지 껍데기에 대하여 흠모의 념을 가진 분이 두 사람 있다. 두분 모두 우아한 용모와 그윽한 기품을 지닌 여성들이다. 굳이 이름을 말한다면, 한분은 '우아한 여인'이고 또 한분은 '귀여운 여인'이다. 그날 두 분을 위해서 돼지 껍데기를 공양하는 거사를 행하기로 하고 예의 돼지 껍데기집에서 만났다. 

  

초저녁이라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다. 화덕 앞에 둘러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돼지 껍데기의 질감과 맛에 대해 깊이 탐닉하고 있는데 '봉두'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무심히 봉두에게 무전기를 눌렀다. 그것이 불찰이었다. 그가 찬바람을 가르며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 다음은 봉두의 연설회로 무대가 바뀌었다. 

서각이 봐, 난 속상해 죽겠네. 

뭐가 그리 속상한가? 


최틀러가 말이야, 감히 성당에서 자기 변명을 하잖아, 그래서 내가 방송국에 전화를 했지. 성당이 개인의 유세장인가? 감히 성당이 어디라고 말이야. 거기서 자기 변명을 늘어놓고 말이야. 하느님이 어디 그따위 변명을 들어주는 분이냐 말이야. 담당 피디가 성당이 아니고 딴나라당 당사에서 했다 하드구만 

말이야. 아무래도 그렇지 그걸 티브이에 내 보내고 말이야. 


돼지 껍데기는 구울 때 잘 구워야 한다. 너무 익으면 이놈이 

석쇠 위 오십센티 가량 튀어오른다. 잘 보았다가 적당히 


익었을 때 얼른 열이 약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봉두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굽는 일에서 잠시 소홀하게 되었다. 봉두의 이야기가 한참 최고조에 달했을 때, 느닷없이 돼지 껍데기가 타닥! 튀기 시작했다. 


봉두는 거기에 개의치 않았다. 

요즘 언론이나 여론들 말이야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정치 자금 수사에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야. 지들이 


언제 형평성 소리를 한 적이 있어! 


과거 독재 시대에 아무 말 못하고 있더니, 형평성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형평이고 나발이고 지금 수사 

잘하고 있잖아. 잘못했으면 반성이나 할 일이지. 

입이 열 개라도 말못할 넘들이 형평성 좋아하네. 

돼지 껍데기가 또 한번 튀었다. 


언론들 말이야. 

지들은 사실 보도를 한다고 하는데 진정한 사실 보도는 

그런 게 아니야. 사실 보도를 하려면 역대 대통령 당선자 

가운데 누가 정치 자금을 가장 적게 쓰고 대통령이 되었는가? 그걸 보도하란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 해서 대통령을 뽑았는가 말이야. 조선민국 건국 이후 부정 부패의 주류를 끊은 것이 


지난 대선 아니야? 그렇게 해서 우리는 민주화를 한 발 앞으로 나가게 한 것 아닌가? 근데 뭐야? 측근이 몇 천 만원 받았다고, 집 한 채 어떻게 했다고, 부동산 투기라고 하고 물고 늘어지고 말이야, 그걸 사실보도라고 할 수 있어? 또 돼지 껍데기가 튀었다. 이번엔 이넘이 튀어서 내 이마로 날아왔다. 그 때는 봉두도 예의 그 약간 틈이 생긴 대문 이를 드러내고 사람 좋게 웃었다. 


어떤 넘들은 말이야, 적게 받았든 많이 받았든 그넘이 그넘이고, 정치하는 넘들 믿을 넘 한 넘도 없다고 한데 말이야, 


이 말도 자세히 뜯어보면 딴나라당이 수세에 몰리니까 하는 말 아니겠어?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때 놈현이 되리라고 믿은 넘 누가 있어? 다들 창이 된다고 했잖아, 정치 자금이 어디로 갔겠어? 모두 창에게 줄 서기 했잖아? 우리 역사상 돈 많이 쓰고 떨어진 건 그넘들 뿐이잖아. 그게 선거 혁명이 아니겠어? 그런데 왜들 그렇게 난리야. 딴나라당 지들이 대통령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게 신기해. 벌써 은퇴해야할 것들이, 

역사의 죄인들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차떼기로 돈 받아 

먹은 넘들이 말이야? 

이번엔 돼지 껍데기가 튀지 않았다. 불이 사위었기 때문이다. 


데모를 너무 많이 해. 돼 먹지 않은 것들이 너도 나도 데모야. 그리고 말이야,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을 안 해. 얼마나 어렵게 뽑은 대통령이야. 

왜들 그래? 응? 지난 시대 같으면 대통령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던 것들이 말이야. 지금은 민주화 되었다고, 

입 달린 것들은 모두 한 마디씩 하잖아? 민주화? 지들이 민주화를 위해 뭘 했어? 죽어가며, 고문당하며, 민주 열사들이 온몸으로 이루어낸 민주화야! 길 닦아 놓으니 문디 먼저 지나간다고 말이야. 택도 아닌 것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고 있어. 밤이 깊었다. 이제 마실 소주도, 튈 것도 없었다. 


불법 자금을 말이야, 트럭으로 받았으면 말이야. 

반성을 해야지, 그리고 법의 심판을 기다려야지. 

언넘이 불렀는 것처럼 말이야. 스스로 검찰에 쳐들어가서 

말이야. 나를 구속해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법을 그렇게 잘 아는 넘이 검찰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가서 날 조사하슈. 이게 법을 공부한 넘의 짓이야? 

이게 데모 아니고 뭐야. 근데 말이야, 더 웃기는 건 

그걸 멋있다고 하는 넘들이 있어요. 사람 환장하게시리 말이야. 


우리는 다소곳한 학생처럼 봉두의 기나긴 연설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의 연설을 듣느라 고막이 먹먹할 정도였다. 

그날 우리는 자정이 가까워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내 친구, 김봉두, 그의 연설을 경청해준 귀한 두 분, 

우아한 여인과 귀여운 여인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돼지 껍데기가 미용에 다소나마 기여하게 되었기를 

소망하면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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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 gunni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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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두의 고향 마을은 태백산 발치의 강원남도 산골이다. 

태백산맥 줄기에 입지해서인지 이 인근에는 파르티잔(빨치산)이 유난히 많은 곳이었다. 

봉두와 가까워지면서 나는 봉두로부터 그의 고향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 파르티잔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의 머리 속에 영인된 파르티잔의 이미지는 냉정하고 무자비한 인간상이었다. 그것은 아마 나의 성장 시기가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로 국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봉두가 나에게 들려준 파르티잔 이사열의 이야기는 내 머리 속에 심어진 파르티잔의 이미지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봉두의 친구 삼식의 부친이기도 한 이사열은 이 마을에서 

인물 좋고 머리 좋기로 이름난 젊은이였다. 

그가 골목을 지날 때는 동네 처녀들이 울타리 뒤에서 혹은 

울타리 너머에서 몰래 바라보고 가슴을 설레곤 했다고 한다. 독학으로 신학문과 사회 과학 공부를 한 이사열은 해방 공간에서 열렬한 사회주의자로 활동하게 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이 내려오자 이사열은 군당위원장이 되었다. 

인민군 점령 당시의 사회상은 어느 지역이나 그 양상이 다르지 않았다. 


읍내에 주둔한 인민군은 소와 양식을 징발하고 차용증을 써 주었다. 지주 계급에 억눌려 살던 젊은이들은 빨간 완장을 차고 기세 등등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곧 이어 군인, 경찰, 공무원의 집에는 재산 몰수를 의미하는 빨간딱지가 붙고, 악질 반동분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인민 재판이 열리려고 하였다. 북에서 내려온 당 지도위원은 이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었다. 


피의 제전을 벌이려는 당 지도위원에게 이사열은 제동을 걸었다. 


"내 구역은 내가 책임진다. 한 사람도 다치지 않게 하라!" 


물론 지도부로부터 거센 저항이 있었지만 이사열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 마을에는 인민 제판도 없었고 한 사람의 인명 피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전쟁도 인천 상륙작전으로 역전되었다. 

다시 국군이 마을에 주둔하고 인민군은 태백산맥을 따라 북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사열은 아내와 4남매를 남겨둔 채 인민군과 함께 북으로 갔다. 이 당시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마을을 점령하게된 우익 세력들에 의해 보복이 자행되었다. 


어떤 이는 감나무에 묶여 처형당하고 어떤 이는 뭇매를 맞아 폐인이 되기도 했다. 

마을에 남은 이사열의 가족도 피를 말리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이 없는 그의 집에는 늘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쌀, 땔감, 된장 등의 생필품이 마루에 쌓이곤 했다. 봉두 친구, 삼식이 가족은 어려운 전쟁 시기에도 굶주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사열 씨가 북에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진달래꽃이 몇 번 피고 져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마을 사람들에게, 이념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감동만을 남겨 놓은 채, 

태백산맥을 따라 사라지고 말았다 한다. 

휴머니스트이자 파르티잔인 이사열, 그는 아마 북녘 하늘 어딘가에서 민족의 비상을 위해 왼쪽 날개를 부지런히 움직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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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 gunni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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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봉두는 경북과 충북의 접경에 있는 경계초등학교 근무한 적이 있다. 이 학교의 행정 구역과 학구는 경북에 속해 있었다. 이 마을은 행정 구역상 명칭만 경북이지 실상 생활권은 충북이다. 


어느 실없는 넘이 자를 대고 금을 그었는지 모르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장도 충청도 장을 보고 말씨도 충청도 방언을 쓴다. 그런데 면 소재지는 산 넘고 물 건너 30리 오솔길을 걸어경상도로 가야 하니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발통문을 내어 이 지역을 충청도에 편입시켜 줄 것을 진정하기에 이르렀다. 경상도가 발칵 뒤집어졌다. 군수, 교육장, 면장, 교장 등의 인사들이 이를 적극 막고 나섰다. 행정 구역이 충청도로 넘어가면 경상도의 면적이 줄어들까 그러는지, 혹은 경상도의 교장 수가 줄어들까 그러는지 몰라도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필사적으로 진행되었다. 

공무원과 교사를 동원하여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때만 해도 시골 사람들은 관을 두려워하고 관의 말이라면 순순히 잘 듣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선거 때도 이장이 다가끼 마사오를 찍으라면 시키는 대로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여촌 야도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도회지에서는 야당 표가 많이 나오고 시골은 여당 표가 많이 나온다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장식하는 중요한 선거 용어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거의 설득되었을 무렵 양도의 높은 분들이 진상 조사를 나온다고 했다. 만사 불여 튼튼이라고 그들이 실사를 나오기 전날 교장은 봉두를 불렀다. 평소 바른 말을 잘 하는 봉두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김 선생님, 이제 모두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내일 교육감이나 도지사가 묻거든 경계 초등학교는 경상도에 있는 게 낫다고 대답해야 됩니다. 아시겠지요? 우리가 남입니까? 우리 경상도는 한다면 하지 않습니까? 경상도 사나이의 본때를 보여줍시다." 


"예, 알겠습니다." 

교장의 당부가 무색할 정도로 시원스런 대답이었다. 그래도 교장은 못미더워 

"꼭, 부탁합니다." 하고 반복법을 즐겨 사용했다. 교장은 봉두가 속으로 반복법의 빈번한 사용은 잔소리라고 정의를 내리는 속내를 알 길이 없었다. 


이튿날 높은 분들이 찾아왔다. 까만 차를 탄 양복쟁이들이 산골 마을에 오니 온 마을이 벌벌 떠는 것 같았다. 교장과 면장, 군수와 교육장이 높은 분 주위에 복실강아지처럼 따라다녔다. 뭇 사람들이 높이 되려는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높은 분들은 걸음걸이도 다르고 몸의 동작 모두가 달랐다. 차에서 내릴 때에도 다른 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열어주어야 내리고 교무실의 문도 교장이 열어주어야 들어가는 것이다. 


봉두는 높은 분들이 있는 교무실의 상황이 궁금했다.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에 모든 시선이 봉두에게 집중되었다. 교장 자리에 앉아 있던 도지사도 봉두를 보았다. 곁에 있던 교장이 소개를 했다. 


"우리 학교 김 봉두 선생님입니다." 

도지사가 봉두를 향해 물었다. 


"여기 와서 보니 모두들 경계 초등학교는 경상도에 두는 것이 낫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장, 교육장이 봉두를 향해 무언의 눈길을 보냈다. 그 눈길은 애원 것 같았다. 봉두는 그들의 눈길을 잡초 베어내듯이 잘랐다. 


"예, 제가 보기엔 충청도로 넘기는 것이 낫습니다." 

온 교무실이 뒤집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지사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권이 충청도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훨씬 합리적이며, 이 지역 주민의 숙원이기도 합니다." 


높은 분들이 가고 난 뒤 봉두는 교장실에 호출을 당했다. 


"당신 왜 그래?" 


"무슨 말씀인신지요?" 


"어제 그렇게 당부했잖아?" 


"저는 부탁하신 대로 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경상도 사나이는 한다면 하지 않습니까? 저는 사실 대로 말했습니다. 저보고 왜 화를 내십니까? 우리가 남입니까?" 


교장은 거의 뒤집어지려 했다. 


그 이듬해 봉두는 경계 초등학교 분교로 쫓겨가게 되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물어 물어 찾아간 그곳은 오지 중에 오지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모든 생활이 조선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녁상을 앞에 놓고 대병 소주로 반주를 할 때, 두꺼비가 방안으로 껑충 뛰어 들어왔다. 두꺼비에 한 잔 따르어 내밀었다. 

"자네도 한 잔 하게." 


두꺼비는 눈만 껌뻑껌뻑 했다. 


"안 마시면 내가 마시지." 


그러고 자기가 마셔버렸다. 


"두꺼비야, 교사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게 잘못이야? 자네도 그렇게 생각해?" 

두꺼비는 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두껍아, 두껍아, 새집 줄게 말 좀 해 다오. 교사가 거짓말해도 되는 거냐?" 

그러면서 또 한 잔 했다. 


우리의 김봉두가 오늘날 술을 마실 줄 알게 된 것은 두꺼비 덕분이다. 그러니까 봉두는 두꺼비 사부로부터 술을 배운 관계로 그의 술 마시는 법은 대개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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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 gunni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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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0년에 독일 베를린으로 넘어와 살고 있는 개발자입니다.

요즘들어 독일 이민에 대한 관심이 높고 그에 대한 문의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민 대행 업체이 제공하는 정보가 실제와 많이 다른 점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아래에 항목 별로 살펴보겠습니다.


- 제일 빠르게 비자를 받으려면 투자이민을 하면 된다. (X)

독일은 기본적으로 투자이민의 개념이 없습니다. 고로 말부터 틀렸습니다.

사업을 하고싶을 경우,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하고, 해당 관청에서 제출된 사업의 타당성을 타진하고 그 사업이  독일 사회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 (말은 이렇게 썼지만 '얼마나 세금을 받아낼 수 있는가'로 해석합니다.)을 줄 수 있는지 봅니다.

이 때 해당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관련 공무원들 앞에서 Presentation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업체에서 모두 대행해준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해주고 싶어도 해수가 없습니다.

직접 본인이 독일에서 처리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렵게 사업계획서가 통과되고 사업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그 기간이 통상적으로 6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사업허가를 받게되면 그것을 가지고 거주허가를 신청하게됩니다. 물론 이에 대한 기간이 또 필요하겠지요.

제가 아는 한 지인은 독일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비자를 받기위해 준비한 기간이 1년이 좀 넘었습니다. (독일인 컨설턴트와 같이 작업한 기간입니다.) 다른 지인 분들은 식당을 운영하시는데 (두분 모두 독일에서 학업을 마치셨습니다. 물론 독일어도 잘하시지요) 영업 시작까지 걸린 기간이 1년이 넘습니다.

다른 지인들의 경우들을 더 설명드리고 싶으나, 굳이 더 추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네요...


- 사업비자를 받고 Blue Card로 2년 뒤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X) 

Blue Card는 피고용인에게 발급되는 비자입니다. 사업비자와 Blue Card를 동시에 받는 방법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Blue Card를 발급받지 않는다면 독일에서는 정치적 망명을 제외하고 2년만에 영주권을 받는 것은 거의 힘들다고 보아야합니다.

일반적인 취업비자를 취득한 경우, 5년(60개월)간 연금납부를 하게되면 영주권 신청자격이 주어지게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주권 신청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영주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스스로 사업체를 등록하게 되면 고용주가 되는 것이지 피고용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꼼수로 한국 사업체의 독일 지사를 설립 후, 그 지사의 직원으로 채용되는 과정을 거친다면 가능할지 모르는 방법입니다.

독일에서는 해당 업체에 대한 인증과정이 생각보다 까다롭기 때문에 이러한 꼼수는 복불복, 케바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절대 독일 현지에서 독립법인을 설립후 Blue Card를 받는다는 말은 믿지 마시길 바랍니다. (법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꼼수를 이용해서 Blue Card를 발급 받으신다면 아마 생활비와 투자금액에 대한 엄청난 압박을 받으실겁니다.

(돈이 많으신 분들, 연간 1억 정도를 약 10년간 지출해도 가계에 별 타격을 받으시지 않는 분들은 제외합니다.)


- 2년 뒤에 생활비가 없더라도 독일은 복지가 좋아서 정부에서 생활비를 보조해 준다. (X)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업비자 2년을 받았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사업이 잘 되지 않아 2년뒤 사업을 정리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 2년 뒤에 비자 연장은 무엇으로 해야할까요? 거주허가가 없는데 난민도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독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외국인 관리사무소에서 갑자기 집에 찾아와 여권을 뺏고 '여권은 몇일까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때, 공항 경찰서에서 돌려받으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으며 추방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물론 강제 추방을 예방할 수 있는 꼼수들이 있지만, 이 글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강제추방만 막으면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영주권 취득이 많은 분들의 목적이겠지요.

그리고 영주권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실업급여나 생활보조금을 받을 생각마십시오.

(실업급여에 대한 사항은 약간 다른 점이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저렇게 깔고 가는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해당 기록들이 남아있으면 (실업급여 level 1 제외) 영주권 신청시 반려 사유가 됩니다.  (사람 정말 잘 만나면 간혹 반려가 되지 않을 수 있으나 너무 기대는 마십시오.)



결론

독일 이민을 준비하면서, 대행 업체에서 위와 같은 사항을 언급하고 꼬신다면,

미련없이 그냥 돌아서십시오.

그들은 이민자의 '성공적인 정착'과 '영주권 취득'이 목적이 아닙니다.

수수료로 건당 작게는 천만원에서 몇천만원까지 받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니 제발 대출을 껴서 2억을 만들고 그 자금으로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제발 '심사숙고'하기를 바랍니다.

정말 이민을 원한다면, 사전조사를 하러 나오십시오.

몇 주가 되었든 몇 달이 되었든 직접 보고 부딪혀보고 가능성을 타진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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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서우

    2016.11.14 15:16 신고


    좋은정보입니다.많은분들이 보시길바래요

  2. 프라우지니

    2016.11.14 20:49 신고


    좋은 정보인거 같습니다. 독일은 그나마 투자이민을 받으니 사람들이 몰리는 모양입니다. 제가 사는 오스트리아는 투자이민은 아예 받지를 않으니 이런식으로 이민을 들어오는 사람들은 없는거 같습니다. 이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취직해서 자리를 잡는것이 어쩌면 제대로 된 방법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 gunnih

      2016.11.14 21:23 신고


      짧은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말씀을 드리면요 독일은 투자이민의 개념이 없고 현재 많은 이민대행업체들이 잘못된 정보로 사람들에게 이민의 장미빛 미래만을 보여주고 돈을 벌려고하는 것을 꼬집고 싶어서 그들이 잘못전달하고 있는 내용들을 큰 단락으로 나누어서 반박하는 글입니다. 오해가 없었으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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