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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김봉두. 6
봉두는 주로 양복을 입고 다닌다.
한때 교사의 정복이 양복인 것처럼 양복 입기를 강요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흔히 말하는
양반 가문의 예를 중시하는 가풍의 영향인 듯 하다.
옛 선비들이 의관을 정제하지 않고는 출입하거나 손님을
맞지 아니했던 것처럼 봉두는 우리의 두루마기 대신
현대의 격식을 갖춘 옷인 양복을 입는다.
학창 시절 격투기로 단련된 그의 몸은 건장하다.
나이가 들면서 약간 넓어진 이마, 훤한 얼굴에 검정색의
안경을 낀 근엄한 표정, 짙은 색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티브이에 나오는 높은 분들과 흡사하다.
그리고 목소리는 평균 이상으로 크고 발음이 분명하다.
봉두가 높은 분과 두툼한 손으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할 때
"교사 김봉둡니다."
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면, 난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나 또 한껏 겨레의 스승이라 불리는 교사가
이만한 풍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가끼 마사오, 전도깐 이런 분들이 정권을 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구케우원 선거 합동 유세가 열리고 있었다. 이 지역 오봉구 후보는 육군 소령 출신으로 이미 당선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형적인 수구꼴통의 본거지인 데다가,
고무신과 막걸리, 봉투 등으로 표밭을 다졌으므로,
현 의원인 당나라당의 오봉구 의원이 당선된다는 것은
해총이도 알만한 일이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연단이 설치되고 갓 쓴 어르신에서부터
코흘리는 아이까지 새떼처럼 몰려들었다. 아마 이장님들의
수고가 많았으리라.
봉두는 교무실에서 잡무를 보다가 운동장을 내다보았다.
예의 오봉구 우원이 연설을 하고 있었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모습이 봉두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돼먹잖은 연설을 들어야 하는 것도 열받을 일인데
이자의 거만한 포즈를 보자 기름에 성냥을 그어대는 꼴이었다. 봉두는 교무실에서 밖을 향해 우레와 같은 소리를 질렀다.
"주머니에 손 빼!"
순간 연설은 멈춰지고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누구야! 누구야!"
"교사 김봉두다. 왜?"
봉두의 당당함에 그들은 멈칫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귀에는 '교사 김봉두'가 '어사 김봉두'로 들리는 것 같았다.
"우원님 보고 그러면 됩니까?"
봉두는 그들에게 연설했다.
"민주주의는 백성이 주인이야, 어디 유권자들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말이야. 내가 뭐 그른 소리 했어?
운동장에 모인 유권자들 나이를 더해 봐! 오봉구 나이 백 배도 넘어!
니들은 어른 앞에서 주머니에 손 넣고 이야기하나? 어정쩡하게 말이야!"
봉두의 교훈을 듣는 사람들은 교무실에 불려온 학생과 같았다. 봉두가 더해 봐! 할 때 그들은 정말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하며 더하기를 하는 이도 있었다.
봉두는 제자 사랑이 남다른 선생이다.
그 때문인지 졸업생 가운데는 봉두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극구 사양하지만 선생님께서 주례를 안 하시면 장가를 들지
않고 차라리 중이 되겠다는 넘들이 더러 있다.
박노동 군의 주례를 서기 위해 상경했다.
중앙선 열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내리니
마침 무슨 시위가 있는지 택시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택시 승강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초동의 금슬 예식장까지 제 시각에 닿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난감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체육 시간에 쓰던 호루라기가 만져졌다. 봉두는 짜증스러워서 호루라기를 냅다 불었다.
곤봉을 든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봉두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본 경찰은 거수 경례를 한 다음
다급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택시!"
봉두는 짧게 말했다.
경찰은 황급히 택시를 잡아 봉두 앞에 대령했다.
봉두는 유유히 택시에 오른 다음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
"서초동 금슬 예식장으로!"
봉두는 택시에 앉아 차창으로 스치는 서울의 거리를 바라보며 호루라기가 이렇게 막강한 권위가 있는 물건인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리고 선생 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봉두는 높은 이에게 욕보이기 외에 호루라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습관을 하나 더 가지게 되었다.
-글, 서각 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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