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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김봉두. 10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교사는 대개 대학을 졸업하고

2 평교사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불혹의 나이가 되면 어떤 이는 평교사 그대로 있고

어떤 이는 도의 교육 행정을 담당하는 교육감이

되기도 한다.

대학 시절 옆자리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사람은 평교사로 사람은 고위 공직자로

현실적 삶의 모양새가 갈라지게 된다.

유럽처럼 교권이 보장된 나라에서는 평교사로 있어도

말단이라는 이미지가 없지만,

관료주의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우리 조선 땅에서는

위상이 하늘과 차이다.

 

우리 조선민국에서의 교육 종사자의 승진 제도는

시험도 아니고 선거도 아닌 높은 이에 의한 평가 점수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높은 이의 지시를 싫어하고 교사의 교권 따위를 강조하는 교사는 일찍이 승진을 포기하게 된다.

이를 일러 교육인적자원부 비공식 용어로 교포파라 한다.

 

우리의 봉두도 당연히 교포파다.

교포파란, 폄하하여 말하면 승진의 계단이 되는

교감되기를 포기한 무능한 말종이고

높여 말하면 평교사로 남아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갸륵한 뜻을 가진 자주적 인간형을 말한다.

 

교사들은 연수니, 시범 학교 공개니 하는 모임이 자주 있다.

여기에 가면 단상에는 항상 높은 이가 자리하고 평교사는 항상 낮은 곳에 다소곳이 앉아 높은 이의 말을 들어야 한다.

높은 이는 가르치는 위치에 있고 평교사는 배우는 위치에 있게 된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질서인가?

같이 출발했어도 노력 여하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는

준엄한 사회 질서를 배우게 된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연구를 많이 했어도

승진을 위한 노력이 없는 자는 배워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허점은 있다.

다소곳이 앉아서 배울 권리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 동방국 좃선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인고로 '질문'이라는 매우 좋은 제도가 있다.

높은 이들은 대개 말씀을 끝마칠 무렵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들으신 가운데 질문하실 것이 있습니까?"

대개는 듣는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초의 시간이 지나면

"질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오늘 모임은 마차겠습니다."

하고 행사가 끝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의 봉두는 질문이라는 무기를 전가의 보도로 알고, 조자룡이 쓰듯 한다.

왜냐 하면 평교사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가

질문이기 때문이다.

 

예비군 훈련이라는 것이 있었다.

군에서 제대하면 예비군이 되고 예비군에서 제대하면

민방위가 되고, 성합을 근력도 없어져야 비로소 군대를

면할 있었으니 군사정권 시절 대부분의 남자는 군인이라

있었다.

봉두도 어엿한 조선민국 육군 병장 출신이기에 예비군 소집

통지를 받고 훈련장에 갔다.

당시 조선민국에는 정신 나간 넘이 많았는지 정신교육이란

시간이 있었다.

정신을 교육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정신을 교육하는 넘은 얼마나 높은 정신 세계를 가진 넘인지 웃기는 공화국 시절이었다.

대위 계급장을 군인이 올라 왔다.

 

"지금 광주에서는 폭도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봉두가 손을 들었다.

 

"제가 알기로 광주 시내에는 가게에 물건을 잃은 사람도 없고,

습격을 당한 사람도 없는데, 광주 시민들이 폭도입니까?

폭도의 개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교관이 말했다.

 

"오늘 교육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봉두 덕분에 예비군 훈련은 아주 쉽게 끝나고 말았다.

훈련장에서 사적으로는 온갖 불평 불만을 늘어놓던 예비군

용사들이 훈련을 단축시켜준 봉두에게는 고맙다는 한마디 없이 저마다의 마누라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정문을 나올 교관이 다가왔다.

그리고 봉두에게 인사를 청했다.

악수를 나누며 그는 눈을 찡긋 하였다.

그것이 사귀자는 것인지 고스톱을 하자는 것인지

그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통일교육 연구 학교가 연구공개를 다음 외래 교수가

특강을 하는 자리에서였다.

외래 교수는 통일 교육이 아닌 반공 이데올로기를 끝없이

나열하는 것이었다.

분단 이후 반공에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들어왔기에 신물이

정도인데 전문가라는 자가 그러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라

생각한 봉두는 전가의 보도를 만지작거리다가 드디어 검을

뽑았다.

 

"분단 이후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의 가장 잘못된 정책 가지씩만 예를 들어 말씀해 주십시오."

 

강사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 그점에 대해서는... , 자리에서 말할 없습니다."

 

순간을 모면하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행사를 모양새 좋게 봉합하려는 의도로 높은 분이 곁에서 거들고 나섰다.

 

"그런 엉뚱한 질문을 삼가 주십시오."

 

봉두는 근엄하게 가르쳤다.

'삼가 주십시오' 어법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엉뚱한 질문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통일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쟁을 하지 않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통일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하나가 있습니까? 질문이 엉뚱한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높은 이가 말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높은 이는 노기가 충천해 있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청룡이 수염을 거스르는

노여움으로 치를 떠는 것이었다.

감히 평교사가 높은 이를 가르치려 들다니

교육계의 질서가 있는 게야, 없는 게야?

 

달이 지났다.

연구 공개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는 선생님 분이 바쁜 일이 생겼다. 그래서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을 아름답게 여기는 우리의 봉두가 대신 가겠다고 했다.

교육청에 참관 교사가 김봉두 선생으로 바뀌었다는 보고를

올렸다.

잠시 후에 학교장은 교육청으로부터 전화 통을 받았다.

 

"귀교는 참관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봉두는 편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학교에 공평하게 참관의 영광이 나누어져야

나라의 교육이 발전할텐데 우리학교만 빠져도 된다니

높은 이들의 깊은 뜻은 과연 무엇인고?

 

 

                                                         -, 서각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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