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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봉두는 경북과 충북의 접경에 있는 경계초등학교 근무한 적이 있다. 이 학교의 행정 구역과 학구는 경북에 속해 있었다. 이 마을은 행정 구역상 명칭만 경북이지 실상 생활권은 충북이다. 


어느 실없는 넘이 자를 대고 금을 그었는지 모르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장도 충청도 장을 보고 말씨도 충청도 방언을 쓴다. 그런데 면 소재지는 산 넘고 물 건너 30리 오솔길을 걸어경상도로 가야 하니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발통문을 내어 이 지역을 충청도에 편입시켜 줄 것을 진정하기에 이르렀다. 경상도가 발칵 뒤집어졌다. 군수, 교육장, 면장, 교장 등의 인사들이 이를 적극 막고 나섰다. 행정 구역이 충청도로 넘어가면 경상도의 면적이 줄어들까 그러는지, 혹은 경상도의 교장 수가 줄어들까 그러는지 몰라도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필사적으로 진행되었다. 

공무원과 교사를 동원하여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때만 해도 시골 사람들은 관을 두려워하고 관의 말이라면 순순히 잘 듣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선거 때도 이장이 다가끼 마사오를 찍으라면 시키는 대로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여촌 야도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도회지에서는 야당 표가 많이 나오고 시골은 여당 표가 많이 나온다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장식하는 중요한 선거 용어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거의 설득되었을 무렵 양도의 높은 분들이 진상 조사를 나온다고 했다. 만사 불여 튼튼이라고 그들이 실사를 나오기 전날 교장은 봉두를 불렀다. 평소 바른 말을 잘 하는 봉두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김 선생님, 이제 모두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내일 교육감이나 도지사가 묻거든 경계 초등학교는 경상도에 있는 게 낫다고 대답해야 됩니다. 아시겠지요? 우리가 남입니까? 우리 경상도는 한다면 하지 않습니까? 경상도 사나이의 본때를 보여줍시다." 


"예, 알겠습니다." 

교장의 당부가 무색할 정도로 시원스런 대답이었다. 그래도 교장은 못미더워 

"꼭, 부탁합니다." 하고 반복법을 즐겨 사용했다. 교장은 봉두가 속으로 반복법의 빈번한 사용은 잔소리라고 정의를 내리는 속내를 알 길이 없었다. 


이튿날 높은 분들이 찾아왔다. 까만 차를 탄 양복쟁이들이 산골 마을에 오니 온 마을이 벌벌 떠는 것 같았다. 교장과 면장, 군수와 교육장이 높은 분 주위에 복실강아지처럼 따라다녔다. 뭇 사람들이 높이 되려는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높은 분들은 걸음걸이도 다르고 몸의 동작 모두가 달랐다. 차에서 내릴 때에도 다른 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열어주어야 내리고 교무실의 문도 교장이 열어주어야 들어가는 것이다. 


봉두는 높은 분들이 있는 교무실의 상황이 궁금했다.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에 모든 시선이 봉두에게 집중되었다. 교장 자리에 앉아 있던 도지사도 봉두를 보았다. 곁에 있던 교장이 소개를 했다. 


"우리 학교 김 봉두 선생님입니다." 

도지사가 봉두를 향해 물었다. 


"여기 와서 보니 모두들 경계 초등학교는 경상도에 두는 것이 낫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장, 교육장이 봉두를 향해 무언의 눈길을 보냈다. 그 눈길은 애원 것 같았다. 봉두는 그들의 눈길을 잡초 베어내듯이 잘랐다. 


"예, 제가 보기엔 충청도로 넘기는 것이 낫습니다." 

온 교무실이 뒤집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지사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권이 충청도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훨씬 합리적이며, 이 지역 주민의 숙원이기도 합니다." 


높은 분들이 가고 난 뒤 봉두는 교장실에 호출을 당했다. 


"당신 왜 그래?" 


"무슨 말씀인신지요?" 


"어제 그렇게 당부했잖아?" 


"저는 부탁하신 대로 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경상도 사나이는 한다면 하지 않습니까? 저는 사실 대로 말했습니다. 저보고 왜 화를 내십니까? 우리가 남입니까?" 


교장은 거의 뒤집어지려 했다. 


그 이듬해 봉두는 경계 초등학교 분교로 쫓겨가게 되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물어 물어 찾아간 그곳은 오지 중에 오지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모든 생활이 조선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녁상을 앞에 놓고 대병 소주로 반주를 할 때, 두꺼비가 방안으로 껑충 뛰어 들어왔다. 두꺼비에 한 잔 따르어 내밀었다. 

"자네도 한 잔 하게." 


두꺼비는 눈만 껌뻑껌뻑 했다. 


"안 마시면 내가 마시지." 


그러고 자기가 마셔버렸다. 


"두꺼비야, 교사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게 잘못이야? 자네도 그렇게 생각해?" 

두꺼비는 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두껍아, 두껍아, 새집 줄게 말 좀 해 다오. 교사가 거짓말해도 되는 거냐?" 

그러면서 또 한 잔 했다. 


우리의 김봉두가 오늘날 술을 마실 줄 알게 된 것은 두꺼비 덕분이다. 그러니까 봉두는 두꺼비 사부로부터 술을 배운 관계로 그의 술 마시는 법은 대개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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