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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김봉두. 3



봉두가 이른바 높은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행위를 아직까지

되풀이하는 일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보내는 눈길은

그리 고운 것이 못된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워서 가끔 이제 그만 두기를 권하기도

한다.

 

"이제 그만하지......"

"그래 말이야, 신부님도 용서하라고 하시는데......"

 

그도 용서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게 되지 않는 눈치다.

그는 유신 정권 국가원수 모독 죄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이력이 있으며, 5 때에도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했을 따름이지만

그를 향한 권력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식함이었다.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지난 군사 정권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고통을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초인적으로 겪어낸 후유증일까.

그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절대 권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형성된 같았다.

 

교사의 정년을 단축한다는 정책이 결정될 무렵이었다.

교장 선생님들이 관광 버스를 타고 이를 반대하는

서울 집회에 참석하러 갔다.

학생들을 위한 일로 집회나 시위를 번도 적이 없는

교장들이 자신의 이득과 관련된 정년 단축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 봉두는 심한 분노를 느꼈다.

 

인근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교장은 없고 서류상으로도 출장이나 외출로 처리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이들을 무단 이탈로 교육청 관리과에

신고했다.

봉두는 방송 통신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이들의 위법함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였다.

 

수업 중에 전화 왔다는 전갈이 왔다. 교무실에 보니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교육청 이비열 장학사에게서 전화란다.

봉두는 비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주 초등학교 교사 김봉두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당신 수업 중에 전화해도 ?"

 

, 나에게 싸움을 걸고 있구나. 봉두는 직감했다.

이제 시작이다.

 

"장학사님은 수업중인 교사에게 전화합니까?

비열한 그만 두십시오."

 

"? 개족같은 자식아!"

 

"제가 개족같습니까? 알았습니다."

 

봉두는 받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했다.

이비열 장학사의 언동에 대해 교육자로서의 품위를

문제삼았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이비열 장학사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비열 장학사는 교육부에 자술서를 썼다.

자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개코 같은 사람아!

이렇게 말한 적은 있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두루 쓰는 말이며, 욕설이 아니다.

 

봉두는 그의 비열함에 다시 어이가 없었다.

그는 5만원 주고 구입한 소형 녹음기에 녹취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고발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교장들 무단 이탈과 이비열 장학사 품위 문제로 교육청은

난감한 지경에 빠졌다.

그래서 봉두를 향한 고전적 수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의 가족, 친지, 지인, 친구 등을 동원하여 봉두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봉두는 그리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날들이 흘러갔다.

이비열 장학사가 봉두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래서 사람은 만났다.

 

" 선생! ! "

 

"사람이 솔직해야지, 정말 개코라 했습니까?"

 

"그래, 개코라 했다."

 

"코와 조지 거리가 얼만데 그따위로 거짓말을 ?"

 

봉두의 목소리는 우레와 같았다.

그는 주눅이 들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개조지라 했다. 잘못했다."

 

그리하여 봉두는 그의 사과를 받았다. 일곱 용서하기를

칠백 하라는 성자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친구 가운데 굴삭기 운전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편의상 그를 삭기라 부른다. 그는 포수이기도 하다.

삭기가 꿩을 마리 잡았다며, 나에게 주었다.

털까지 붙은 꿩을 어찌할 없어서 나는 장가 못간

이씨 집에서 파티를 하기로 했다.

봉두는 꿩의 털을 뽑고 손질을 했다. 털도 뽑고 먹으려는

세상에 그는 얼마나 정직한가?

나는 무를 썰고 양념을 만들어 꿩탕을 만들었다.

된장도 살짝 풀었다.

우선 연락이 되는 친구들만 몇이 장가 못간 이씨의 벽난로

앞에서 조촐한 상을 보아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올해의 꿩파티였다.

 

우리의 화제는 가을의 쓸쓸함에서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로 찌개 그릇만큼이나 총체적 양상을 띠었다.

나는 군대 이야기를 끊기 위해 화제의 전환을 시도했다.

나는 군대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를 여자만큼 싫어한다.

 

"봉두, 이비열 장학사님은 계신가?"

 

봉두는 이비열의 저간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뒤로 그는 승진을 거듭하여 교육장이 되었는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교사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였다가

어느 시골학교로 좌천을 당했다고 한다.

 

"어느 학굔데?" 내가 물었다.

 

" 학교가 사람에게 맞는 학교야."

 

"이름이 먼데?"

 

"반성 초등학교래."

 

우리는 그곳이 그의 진정한 반성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기를 기원하며, 너울거리는 불빛 곁에서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가을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 , 서각 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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